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의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 (문단 편집) === [[오스트리아 병합]](1938) === 이번 러시아의 점령지 병합은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 연방국|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사건과 비교가 가능한 부분이 있다.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관한 국민투표]]와 같이 오스트리아 병합 투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병합 투표는 우크라이나 병합 투표와 달리 비밀투표도 아닌 일방적인 투표에 대놓고 예(Ja)를 아니오(Nein)보다 훨씬 크게 그려놓았으며 아니오 칸은 구석으로 밀어넣었고, 실제로 관련 패러디가 나오는 등 연관짓는 사람이 많다. 다만 그때는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이었다. 당시에도 독일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인물들은 히틀러를 위험한 인물로 평가하였지만, 이는 극소수에 국한되었고 대부분은 단순히 긴 경기침체와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다시 일으킨 지도자라고만 알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도 수년간 끌어온 [[독일-폴란드 무역전쟁|폴란드와의 무역전쟁]]을 끝내는 등 유화책으로 나온 사례도 없지 않았다. 또한 양국간 합병에 대한 공감대도 [[대독일주의]]에서 나타난 것처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독일군이 오스트리아로 진입했을 때 오스트리아 주민들은 열렬히 환영했고, 히틀러가 자신의 고향으로 여긴 [[린츠]]를 방문했을 때나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에서 연설했을 때도 오스트리아인들은 엄청나게 환영했다. 즉 '언젠가는 해야 했던 통일을 히틀러가 총대 메고 해내주었다'는 인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나치와는 성향이 극상성인 [[오스트리아 사민당]] 정치인 [[카를 레너]]도 독일과의 합병은 필요하다고 여겼다. 단지 그 대상이 나치 독일이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사회주의 체제 하의 독일]]이었을 뿐. 즉 오스트리아 내에서 독일과의 합병은 정치색과는 무관한 상당히 대중적인 의견이었다. 우크라이나 역시 [[2022년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에서 [[러시아]]를 택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상당히 많고, 비록 대부분이 친러 성향이지만 소수의 친서방 정치인들을 포함한 전현직 정치인들도 적지 않게 러시아에 투항하는 등[* [[하르키우주]] [[쿠퍈스크]] 시장 헨나디 마체호라는 전쟁 개시 이후 러시아에 도시를 통째로 넘겨주었고, [[헤르손주(러시아)|헤르손주]]와 [[자포로지예주]]의 임시 주지사인 [[블라디미르 살도]]와 [[예브게니 발리츠키]](과거 유럽과 협력해 러시아의 제재 명단에 오른 적이 있지만 친러로 전향했다.)도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해 국회의원까지 역임한 정치인이다. 이외에도 과거 [[우크라이나 사회당]] 대표를 역임한 최고 라다 의원 일리야 키바처럼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러시아에 투항하거나 [[수미주]] [[코노토프]] 등 러시아군과 타협한 사례도 많다.] 합병에 대한 공감대가 오스트리아에 비해 적긴 하지만 존재하긴 했다. 실제로 [[https://youtu.be/x1W0GLumONQ|한 유튜버가 투표 당일 시민들과 인터뷰한 영상]]에서도 가족이 러시아에 있다거나 역사적인 이유로 러시아 편입을 별다른 거리낌없이 받아들인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쟁과 가족의 사망으로 기존에 친러 성향이었던 사람들이 상당수 반러 성향으로 돌아섰고, 합병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반러 움직임이 일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